📅 Friday, June 12, 2026 ✍️쓰리김의 성경맛집
2026 월드컵 한국 체코전 역전승을 보며 2002년 월드컵의 추억과 창세기 50장 20절 요셉의 고백을 묵상합니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역전의 진짜 의미는 성공이 아니라 생명 구원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나는 연애 중이었다.
그때의 월드컵은 정말 온 나라의 축제였다.
지금의 남편과 나는 24년전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얼굴에 페인팅까지 하고, 회사 근처 광화문 사거리를 걸었다.
수많은 인파사이에서 기억이 나는 것은 오로지 우리 두사람뿐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면서 우리는 식장을 예약하고 결혼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남편은 축구광이였고 그 시절의 월드컵은 나처럼 축구를 잘 몰라도 재미있었다.
경기 내용보다 더 뜨거웠던 것은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특히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던 순간이다.
그 골이 들어가던 순간, 정말 온 동네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집집마다 창문 밖으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아파트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와아아아!”
그 소리는 단순한 축구 응원이 아니었다.
마치 온 나라가 한 마음으로 뛰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지금처럼 각자 손에 쥐고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TV 앞에 모였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회사 사람들끼리,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함께 봤다.
골이 들어가면 내 집만 환호한 것이 아니었다.
옆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길 건너 가게도 함께 환호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모두가 한 팀이었다.
2026년, 다시 월드컵이 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열렸다.
이번 월드컵은 캐나다, 미국, 멕시코가 함께 개최한다.
캐나다에서도 월드컵이 열린다니 처음엔 괜히 마음이 설렜다.
“혹시 우리 동네에서도 하나?”
하는 기대가 먼저 올라왔다.
그런데 찾아보니 캐나다 개최 도시는 밴쿠버와 토론토였다.
에드먼튼에는 월드컵이 오지 않는다.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뭐 딱히 아쉽진 않다. 지금은 예전같은 열정이 없으니... ㅎㅎㅎ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예전만큼 월드컵이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경기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함께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TV 앞에 가족이 모였다.
치킨을 시키고, 과일을 깎고, 누군가는 소파에 앉고, 누군가는 바닥에 앉아 같은 장면을 봤다.
골이 들어가면 같은 순간에 소리쳤고,
실점하면 같은 순간에 탄식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아이들은 각자 핸드폰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같은 집 안에 있어도 각자 다른 화면을 보고, 각자 다른 세계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옛날 같은 흥이 없다.
월드컵이 변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함께 환호하는 법을 조금 잊어버린 걸까.
그런데 한국과 체코의 경기를 보며, 내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한국, 체코를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
한국이 2026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체코를 상대로 2대 1 역전승을 거두었다.
체코가 먼저 골을 넣었다.
경기가 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포기하지 않았다.
황인범 선수가 동점골을 넣었고, 오현규 선수가 결승골을 넣었다.
한국은 결국 경기를 뒤집었다.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한국이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승리한 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 이후 16년 만이라고 한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2006년 독일 월드컵 토고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에 이어 통산 네 번째로 월드컵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16년.
누군가에게는 그냥 기록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 사이 한국 축구도, 우리 삶도 참 많이 변했다.
2002년에는 남편과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2026년에는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한국의 월드컵 역전승 소식을 듣고 있다.
사는 나라도 달라졌고, 가족의 모습도 달라졌고, 응원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의 역전승 소식은 잊고 있던 그때의 함성을 다시 깨웠다.
역전승은 점수만 뒤집는 것이 아니다.
식어가던 마음도 다시 뛰게 만든다.
사람들은 왜 역전승에 환호할까
월드컵에서의 역전승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팀의 승리다.
사람들은 그 승리에 열광한다.
내가 직접 뛰지는 않았지만, 내가 직접 골을 넣지는 않았지만, 내가 속한 나라의 누군가가 나 대신 이겨준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그 환호 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우리도 할 수 있다.”
“끝까지 가보자.”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축구를 보며 자기 인생도 함께 응원하는지도 모른다.
지고 있던 경기.
답답하게 흘러가던 시간.
이대로 끝나는 건가 싶은 순간.
그런데 포기하지 않았더니 흐름이 바뀌고, 결국 뒤집히는 장면.
사람들이 역전승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 우리 인생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내 삶도 다시 일어났으면 좋겠다.
내가 밀리고 있다고 느끼는 자리에서도, 마지막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역전승은 사람을 뜨겁게 한다.
성경 속 역전의 삶을 산 사람들
성경에도 역전의 삶을 산 사람들이 많다.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지고,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이야기를 감옥에서 끝내지 않으셨다.
요셉은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가족과 민족을 살리는 사람이 되었다.
다윗은 들판의 어린 목동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작게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셨다.
골리앗 앞에서 다윗은 작아 보였지만, 믿음은 작지 않았다.
룻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이었다.
가진 것도, 보장된 미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성실한 걸음을 예수님의 족보 안에 넣으셨다.
에스더는 두려움 속에 있었지만, 자기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믿음의 결단을 통해 한 민족이 살아났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실패한 제자였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를 다시 부르셨고, 그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성경 속 역전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하나님이 끝난 것 같던 인생을 다시 붙드시고, 상처와 실패와 눈물까지도 선으로 바꾸시는 이야기다.
잠깐만~~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요셉의 역전은 성공이 아니라 생명 구원이었다
우리는 요셉의 말씀을 읽을 때 자주 여기서 멈춘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하나님이 내 상황을 선으로 바꾸실 거야.
내 인생도 좋아질 거야.
내 억울함도 풀릴 거야.
나도 결국 역전될 거야.
물론 그것도 맞는 위로다.
하지만 요셉의 고백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신 목적은 요셉 한 사람의 성공이 아니었다.
노예에서 총리가 된 개인 성공담이 아니었다.
그 역전의 끝에는 생명 구원이 있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
하나님의 역전은 나 한 사람 잘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전은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흐른다.
내가 회복되는 이유는 나만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다시 일어나는 이유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흘려보내기 위해서다.
요셉은 역전 후 복수하지 않았다
요셉은 정말 역전된 사람이었다.
형들은 그를 팔았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복수할 수 있는 자리였다.
형들이 두려워한 것도 당연하다.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형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요셉이 우리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그런데 요셉은 그들에게 두려움과 시기를 선물하지 않았다.
권력으로 갚지 않았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시 상처로 되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겠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요셉이 그들을 위로했다고 기록한다.
영어 성경 표현이 정말 아름답다.
“He spoke kindly to them.”
그는 그들에게 따뜻하게 말했다.
따뜻한 말한디의 힘을 아는가?
친절하게 말했다.
간곡한 말로 위로했다.
이 얼마나 멋진 역전인가.
이긴 사람이 따뜻해지는 역전.
높아진 사람이 낮은 사람을 위로하는 역전.
상처받은 사람이 다시 상처 주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역전.
요셉의 역전은 형들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형들을 두렵게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요셉의 역전은 사람을 살리는 자리로 흘러갔다.
역전된 인생도 결국은 죽는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것은 그 다음이다.
요셉은 결국 죽었다.
아무리 역전된 인생도 끝이 있다.
총리가 되어도, 성공해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도, 결국 인생은 끝난다.
하지만 요셉은 죽기 전에 자기 성공을 붙잡지 않았다.
자기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남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이 고백이 너무 아름답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끝나지 않으신다.
나는 여기까지지만,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계속된다.
내 인생의 역전은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흘러간다.
요셉의 마지막 시선은 자기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있었다.
이것이 믿음의 역전이다.
기다림 끝에 찾아온 역전의 의미
한국의 체코전 역전승은 짜릿했다.
16년 만의 월드컵 첫 경기 승리라는 기록도 마음을 뜨겁게 했다.
하지만 성경을 묵상하며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바라는 역전은 무엇인가.
단지 내 이름처럼 내가 이기는 것인가.
내가 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는 것인가.
월드컵의 역전승은 우리를 잠시 환호하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전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다.
2002년 안정환 선수의 골이 들어갔을 때, 온 동네가 환호했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누군가가 우리 대신 뛰어주었고, 우리 대신 이겨주었다.
그 승리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 삶의 갈망까지 함께 터뜨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역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 삶을 역전시키시는 이유는 내가 더 높아지고, 더 인정받고,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데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묻는다.
내 삶의 역전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내가 회복된다면, 나는 누구를 위로할 것인가.
내가 다시 일어난다면, 나는 누구에게 따뜻하게 말할 것인가.
내가 선으로 바뀐 삶을 산다면, 그 선은 누구의 생명을 살리는 자리로 흘러갈 것인가.
이제 역전되리라
오늘의 추천 찬양으로는 자연스럽게 이 찬양이 떠오른다.
“이제 역전되리라.”
월드컵의 역전승은 점수가 뒤집히는 순간이다.
하지만 믿음의 역전은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내가 보기에는 늦은 것 같고, 이미 기회를 놓친 것 같고, 예전의 뜨거움도 사라진 것 같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내 삶의 남은 시간을 붙들고 계신다.
2002년의 나는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2026년의 나는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월드컵 소식을 듣고 있다.
그 사이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은 자랐고, 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고, 예전처럼 한 TV 앞에 모여 소리치는 시간도 줄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의 뜨거움만 그리워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다시 믿음을 붙들라고 하신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월드컵의 역전승은 우리를 잠시 뜨겁게 하지만,
하나님의 역전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다시 살게 한다.
그리고 그 역전은 나 혼자 잘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요셉은 역전된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 죽었다.
그러나 죽기 전 그는 말했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고백 앞에서 나도 조용히 마음을 모은다.
하나님 안에서, 이제 역전되리라.
그리고 그 역전은
나를 넘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리라.
📖쓰리김이 오늘나누고 싶은 말씀은 창세기 50장 20절 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장 20절
영어로 읽는 오늘의 성경구절
“You intended to harm me, but God intended it for good
to accomplish what is now being done, the saving of many lives.”
Genesis 50:20
🎵쓰리김의 오늘의 추천 찬양
이제 역전되리라 ~ 시와그림의 「이제 역전되리라 」 를 들으면, 단순히 상황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노래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다시 붙드시고, 그 회복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7YylIK9Mgc&list=RDB7YylIK9Mgc&start_radio=1
✍️함께 읽으면 좋은 글
https://www.seungriwithgod.com/88
성시경 ‘두 사람’을 듣다가 생각난 전도서 4장 9~10절 | 하나님이 말씀하신 두 사람
📅 Thursday, June 11, 2026 ✍️쓰리김의 성경맛집요즘 화제인 성시경의 '두 사람'을 듣다가 생각난 전도서 4장 9~10절. 왜 사람은 혼자보다 둘일 때 더 사람다울까? 사람 인(人) 자와 성경 속 두 사람
www.seungriwithgod.com
https://www.seungriwithgod.com/87
스가랴 4장 6절 말씀 묵상 | 디카페인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인다고? 커피는 나를 깨우지만 성령님
📅 Wednesday, June 10, 2026 ✍️쓰리김의 성경맛집 디카페인 커피가 오히려 집중력을 높인다는 KBS 뉴스를 보며 떠오른 질문. 정말 나를 움직이는 힘은 카페인일까, 성령님의 도우심일까? 스가랴 4장
www.seungriwithgod.com
https://www.seungriwithgod.com/86
하늘의 별들의 이름도 아시는 분|The Chosen 시즌 1 에피소드 1과 이사야 43장 1절 묵상
📅 Tuesday, June 9, 2026 ✍️쓰리김의 성경맛집 The Chosen 시즌 1 에피소드 1을 다시 보며 막달라 마리아, 니고데모, 시몬 베드로, 마태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이사야 43장 1절 “내가 너를 이름으로 불
www.seungriwithgod.com
'성경 묵상과 신앙생활 > 일상 속 신앙 적용 (성경 묵상을 일상과 연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사야 49장 6절 | 이방의 빛으로 살아가는 딸들에게 보내는 엄마의 기도 편지 (4) | 2026.06.15 |
|---|---|
| 성시경 ‘두 사람’을 듣다가 생각난 전도서 4장 9~10절 | 하나님이 말씀하신 두 사람 (43) | 2026.06.12 |
| 스가랴 4장 6절 말씀 묵상 | 디카페인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인다고? 커피는 나를 깨우지만 성령님은 나를 변화시키신다 (28) | 2026.06.11 |
| 두 번째 나라에서 다시 시작하는 중년 이민자 – 빌립보서 3장 13~14절, 오늘의 성실이 내일의 문을 연다 (28) | 2026.06.09 |
| 비교는 나를 흔들고 감사는 나를 지킨다[야고보서 3장 13–18절]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교회를 세우는 사랑 (36) | 2026.06.08 |